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봉구 갑 (문단 편집)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김근태]] 전 의원은 2011년 12월 투병생활 끝에 사망하였다. 대신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이 출마하였다. 인재근 후보 역시 남편 김근태와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며 1988년 공동으로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한만큼 김근태의 평생의 동지였다. 남편이 아니라 인재근 본인의 이름으로 승부해도 충분한 인물이었다. 1987년 로버트케네디 인권상 수상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지 않다가 남편의 작고 이후,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남편의 지역구에 경선도 없이 전략공천을 받았다는 것은 과연 남편의 후광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지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이에 맞서는 [[새누리당]] 후보는 여성기업인 유경희 유한콘크리트산업 대표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기지회 부회장도 맡고 있었다. 여성 인권운동가와 여성 기업인의 대결로 화제가 되었고, 두 후보 모두 전략공천되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유경희 후보는 낙후된 도봉구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성공한 여성기업인으로써 풍부한 기업운영 경험을 바탕이 있는 자신이 적격이라고 했다. 김근태 전 의원이 지역발전보다 중앙정치에 노력을 기울였다면 자신은 중앙정치보다는 도봉구를 발전시키고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데 노력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재근 후보는 도봉구에 30년간 살며 남편과 이 지역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고 주장했다. 창동민자역사 건설과 쌍문동 둘리미술관 건립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인권운동을 통해 인권 향상에 힘썼던 만큼 민주주의와 서민을 위해 노력할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 시기에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원장이 인재근 후보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파급력이 있었다. 결국 인재근 후보가 18.3% 차이로 크게 이기며 당선되었다. ||<-4> [[도봉구 갑|{{{#3AB34A {{{+1 '''도봉구 갑'''}}}}}}]][br]{{{#3AB34A 쌍문1동, 쌍문3동, 창1동, 창2동, 창3동, 창4동, 창5동}}}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유경희(柳京姬) || 31,361 || 2위 || || [include(틀: 새누리당(2012년))] || 40.13% || 낙선 || ||<|2> {{{#3AB34A {{{+5 '''2'''}}}}}} || '''[[인재근|{{{#373a3c,#dddddd 인재근}}}]](印在謹)''' || '''45,682''' || '''1위''' || || [include(틀: 민주통합당)] || '''58.46%''' || {{{#000000 '''당선''' }}} || ||<|2> {{{#FEDD02 {{{+5 '''6'''}}}}}} || 박춘엽(朴春燁) || 1,094 || 3위 || || [include(틀: 정통민주당)] || 1.40%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142,229 ||<|3> '''투표율'''[br]55.29% || || '''투표 수''' || 78,644 || || '''무효표 수''' || 507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